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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주간 이야기/올해의 활동들

[난민주간 토크콘서트] 자유를 향한 용기

[난민주간 토크콘서트] 자유를 향한 용기

 

난민주간 시민기자단  김현리

  

 

난민주간의 마지막 날이자 세계 난민의 날620, 시민청 이벤트 홀에서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시민청에 들어서는 순간 커다란 귀 모양의 청사 로고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얼른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옛 서울시청에서 새롭게 단장한 시민청은 관청 청()’자가 아닌 들을 청()’자를 쓰기 때문에 푸른 색의 귀 모양을 로고에 넣었다고 하는데,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공간을 뜻한다는 점에서 이번 난민주간 토크콘서트가 지닌 특별한 의미와도 많이 닮아 있었다. 시민들과 난민들이 만나,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해나가는 것이 이번 토크콘서트의 가장 큰 의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리게 된 두려움 앞에서, 삶의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자유를 향한 발걸음을 끊임없는 내딛는 이들의 인생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기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단체 중 하나인 공익법센터 어필(APIL) 김종철 변호사님의 사회로 토크콘서트의 막이 열렸다. 김 변호사님은 난민 분들로부터 듣게 된 그들의 드라마틱한 삶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난민분야에 관심을 갖고 일을 하시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토크콘서트를 통해, 그들의 기적과도 같은 인생 스토리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삶의 위로와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고 하셨다.

 

  

 

    토크콘서트에는 세 가지의 이야기 손님들이 초대되었다. 콩고의 M씨와 라이베리아의 J, 그리고 난민 분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일을 하는 포토보이스의 김지하, 김승균씨 부부가 그 주인공이었다.

 

  

   먼저, 콩고에서 온 미아부인의 이야기. 그녀는 자유를 향한 자신의 용기 있는 여정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래 르완다의 USDS 보안업체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반군의 스파이로 몰려 온갖 고초를 겪다 2004년에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들어와서도 난민 지위를 받기까지 6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겼었다. 본국에서 겪었던 심리적 충격이나 아픈 기억을 다시 소상하게 기억해내야 하는 면담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 그리고 취직해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함께 데려온 두 아들과 함께 겪어야 했던 생활고 등 그녀의 고난은 단순히 르완다를 피해 떠나온 것만으로는 온전히 해소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에코팜므라는 난민지원 네트워크 단체에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작가로 일하면서 다시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비록 예전에 꿈꾸던 비즈니스 우먼이 되지는 못했지만 꿈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거니까 괜찮다고 하며, 이제는 자신의 두 아들 또한 자기 나름대로의 자유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리고 쓰는 이야기들을 통해 한 문화가 다른 문화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함께 그려나가고 싶다고 했다.

 

  

   두 번째 손님은 포토보이스의 김지하, 김승균 부부. 이들은 어딜 가든 남매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항상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일을 하며 살아가니 점점 닮아갈 수밖에. 밝으면서도 맑고 깨끗한 이들 부부의 미소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환하게 밝아지게 했다. 이 부부는 난민 분들과 사진이라는 도구를 매개로 소통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명 포토보이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난민들이 사진(Photo)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Voice)를 내는 것이다. 얼핏 보면 별 것 아닌듯한 사진 한 장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아냄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이를 전달함으로써 정서적 치유의 기능도 한다고 한다. 난민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다가올 때 가장 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는 이들 부부의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손님은 라이베리아의 J.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준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회를 보신 김종철 변호사님의 말처럼, 이 분의 인생 이야기는 나중에 책으로도 내도 좋을 정도로 드라마틱했고, 기적적이었다. J씨는 이민국에서 일하시는 아버지를 두어 유복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1989년 내전이 시작되면서부터 모든 것들이 바뀌어버렸다. J씨의 가족은 전쟁을 피해 자신들의 마을을 벗어나 인근 지역으로 옮겼지만 어느 날 식량을 구하러 이웃 마을에 들른 아버지와 누이가 반군으로 오인 받아 살해된 것이다. 당시 J씨는 아버지와 누이의 죽음에 분개하여 법무부에 찾아가 항의했지만 돌아온 것은 가혹한 고문뿐이었다. 아직도 그 때 고문으로 인해 생긴 총기 상처가 발등에 남아 있다고 한다. 이후 반군세력은 J씨가 반군에 가담하기를 끊임없이 권유했지만, J씨는 사람을 결코 죽이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고자 이들을 피해 미국대사관이 있는 도시 중심부로 도망쳤다. 하지만 얼마 후 미국대사관도 폭격을 맞게 됨에 따라 J씨는 인근의 가톨릭 병원 등을 떠돌다 결국 어렵게 이웃 국가 가나로 이동했다. 그러나 반군 세력이 가나의 난민캠프에까지 이르는 등 그 곳에서 마저도 안전의 위협을 받자 마침내 한국행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소중한 가족을 잃었고, 끊임없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했던 그의 삶은 사실 절망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는 어릴 적 할머니께서 알려주셨던 희망의 힘을 믿었고 이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 가장 소중한 버팀목이었다고 한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들이 지닌 나름대로의 사연과 이야기들에 잘 들으려 하지 않았고, 따라서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을 이해하기도 어려웠던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토크콘서트는 난민이 시민에게, 시민이 난민에게 서로 마음을 열고 다가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었던 뜻 깊은 자리였다. 이런 기회가 많아질수록,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게 될 수록 어느새 난민들도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일부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난민주간 시민기자단 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