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주간, 알찬 첫 발을 내딛다
난민주간 시민기자단 채유성
서울의 중심에서 “난민”을 외치다.
적당히 선선하고 적당히 더웠던 6월 15일, <2013년 난민주간>이 시작되었다. 날씨도 날씨였지만 무엇보다 광화문이라는 장소가 마음에 들었다. 광화문은 서울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지닐 뿐만 아니라 ‘다양성’이 어느 정도 존중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피부색 때문에 이방인이 되지 않고 나도 언제나 ‘나그네’가 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공연은 이런 광화문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라퍼커션>의 브라질 리듬과 <칸>, <지구인밴드>의 이색적인 음악 속에 난민, 시민, 관광객의 구분은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 모두 각자의 스토리를 안고 순간을 즐기는 하나의 ‘점’들이었다. 동작 하나 하나에 난민의 삶을 담은 <무브먼트 당당>의 공연 또한 인상 깊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외면 받는 이들이 예술의 주제가 되어 시민의 곁으로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라퍼커션>의 강렬한 퍼포먼스와 사운드 - <무브먼트 당당>의 심오한 움직임 - <칸>, <지구인밴드>의 힐링이 되는 음악 순으로 진행 된 공연들은 꼭 하나의 프로그램처럼 자연스러웠다. 난민 이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었다. 광화문 행사의 처음과 끝을 함께한 이 공연들이 난민을 심각하고 무거운 문제가 아닌 함께 얘기해 볼만한 무언가로 남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색깔의 점들이 공존한 축제
이번 행사에는 <난민인권센터>, <따비에>, <에코팜므>, <록빠>, <JPNK>, <휴먼아시아>, <UNHCR>, <공감>, <동천>이 참여하여 단체의 특색을 살린 부스를 운영하였다.
특히 버마 전통놀이나 ‘난민은 [ ]다’ 채우기, 난민 이야기를 듣고 함께 그림을 완성시키는 프로그램을 준비한 부스는 어린이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서툴지만 나름대로의 난민을 정의해가는 아이들을 보며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아이들이 짧은 경험을 통해 난민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훗날 난민을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존재가 아닌 ‘어렸을 적 그 행사에서 떠올려 봤던 그 이름’으로 기억할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있는 경험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난민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자신과 한국 사회에 보내는 편지를 전시한 부스에는 난민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난민의 입장에서 또 다른 난민의 이야기를 본다는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혹시나 그들의 상처를 건드리게 될까 조심스러웠다. 자신은 절대 난민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던 그 난민은 한참동안 또 다른 난민의, 혹은 자신의 이야기를 곱씹고 있었다. 한국에서 기대한 희망과 마주한 절망을 보여주는 사진과 편지들은 분명 한국인에게도, 아니 어떤 인간에게도 무언가를 느끼게 해 줄 만큼 강렬했다. 하지만 그 편지들은 한국인인 나보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이번 행사의 또 다른 특징은 난민 이슈를 다루는 다양한 단체가 한 자리에 모여 함께 행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이 한국의 첫 난민주간을 기념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행사에 참가한 김재연(18)양은 “한 공간에서 다양한 것을 보고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꼭 난민주간 행사에 참가하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지나는 시민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이아름(20)양은 “평소 관심 있는 이슈였는데, 그 분야에서 일하는 단체들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었던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며 “앞으로 이런 행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점들의 이야기 축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공연, 체험, 전시, 공예품 판매, 일일카페등이 조화롭게 운영되었다. 또한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스티커를 모으면 상품을 주는 소소한 장치들이 시민들의 참여를 높였다. 연령대를 불문한 자원봉사자들은 뙤약볕 아래서 공을 굴리며, 혹은 부스를 운영하며 행사 진행을 도와주었다. 단체와 개인의 협력과 이색적인 프로그램들이 있었기에 ‘우리끼리의 행사’가 아닌 ‘우리 모두의 행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난민을 위한 + 난민에 의한 축제가 되기를
이번 축제는 난민의 존재, 또 그들만의 전통과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난민이나 우리나 각기 다른 색과 가치관을 가진 ‘점’이라는 컨셉도 좋았다. 하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남는다.
가장 큰 아쉬움은 난민이 주체가 아닌 대상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부스는 대부분 한국인 자원봉사자, 혹은 단체 관계자에 의해 운영되었고 정작 난민들은 뒤편에 물러나 있었다. 플래시몹을 비롯한 공연에서도 난민은 관객, 혹은 주제일 뿐 주체가 되진 못했다. 시민과 난민이 직접적으로 소통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전시물, 혹은 제3자의 입을 통해 전달되었다. 난민의 특성상 모든 난민이 행사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몇몇의 난민들만이라도 직접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축제로, 또 그들의 목소리를 존중해 줄 수 있는 사회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난민주간은 고은 시인의 <나그네>라는 시와 함께 시작했다.
한국 사회의 난민도 나그네지만 난민을 잘 모르는 우리도 나그네이다.
그리고 우리 삶에, 이 사회에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주는 나그네가 있어 세상은 지루하지 않다.
광화문 광장을 채운 색색의 공들처럼, 누군가의 작은 손길만 있으면 얼마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점들처럼
우리 모두가 그 공, 그 손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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